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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6-9999(Print)
ISSN : 2287-7851(Online)
Korean J. Environ. Biol. Vol.32 No.4 pp.413-425
DOI : https://doi.org/10.11626/KJEB.2014.32.4.413

Changing Methodologies and Reshaping Concepts in Biodiversity Science: A Historical Review of Research on Human Genetic Diversity

Jaehwan Hyun*
Interdisciplinary Program of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151-742, Korea.
Corresponding Author : Jaehwan Hyun, Tel. 02-880-8129, Fax. 02-886-6758, sisyphus.gg@gmail.com
November 24, 2014 December 5, 2014 December 6, 2014

Abstract

- In order to shed some light on the historical change of biodiversity concepts, this paper reviews the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 literature on the history of biological research on human genetic diversity. By doing that, I show how the notion of genetic diversity in the human population - from “race” to “population” to “biogeographical ancestry” - has changed with methodologies and techniques over the last hundred years. In the meantime, I point out contexts and situations, despite conceptual and methodological developments, that show that current human genetic diversity research is slipping into the past mistakes of scientific racism. This article offers biodiversity researchers an opportunity to consider their own scientific practices on classifying species more reflectively.


생물학 연구 방법론 변화에 따른 생물다양성 개념의 전환: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 사례

현 재환*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초록


    서 론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이 생물다양성 (biodiversity)을 모든 차원에서의 생물체 간의 변이성으로 정의한 이후, 종 풍부도 (species richness)에서부터 특정 종 내 생태학 적, 유전적 다양성에 대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 한 논의와 연구들이 이루어져 왔다 (Takacs 1996). 그런 데 이러한 생물다양성 논의나 관련 메타 연구들에서 인 간이라는 존재는 단편적으로만 언급되었고, 주로 생태계 의 파괴자 혹은 생물다양성의 수혜자로만 그려져 왔다 (Chivian and Bernstein 2008). 그러나 18세기부터 ‘자연사 (natural history)’라는 슬로건 하에 인간 집단의 생물학 적 다양성에 대한 연구는 자연에 대한 생물학 연구와 조응하며 전개되어 왔으며, 이 같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생물다양성 논의의 담론적, 학술적, 정책적 교차는 현재 진행형이다(Haraway 1989, 1997).

    더불어 Jorde et al. (2000)의 경우와 같이 인간 유전다 양성 (human genetic diversity)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가 인간 유전 변이 (human genetic variation), 특히 인간 집 단 간 유전 변이에 대한 과학 연구들을 가리킨다고 볼 때,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는 자연 생물다양성 논의와 조 응하고 교차할 뿐만 아니라 자연 생물다양성 연구 프로 그램에서의 종내 (intraspecific) 연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연 세계에 속한 하나의 종 (species)이기 때문 이다. 일례로 1930년대의 신다윈주의종합, 1960년대의 분자생물학 기술의 발달 등으로 생물다양성을 측정하는 주요 토대인 종 및 아종 개념과 테크닉이 전환되어 온 역사는 인간 종 관련 생물학 연구에서도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었다(Mayr 1985). 이와 함께 인간 집단에 대한 생 물학적 다양성에 대한 연구들의 경우 인종(race)과 같이 인간 종 개념이 담지한 정치적 함의 때문에 그것의 역 사적, 사회적 함의가 다른 종들보다 종합적이고 깊이 있 게 다루어져 왔다. 이러한 점들은 인간 집단의 생물학적 차이를 탐구한 과학의 역사가 한 종의 생물학적 다양성 을 지칭하는 개념의 변화가 시기적으로 어떠한 맥락에 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글에서는 생물다양성 개념의 변화와 그러한 과정 에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문제들을 이해할 한 가지 방 안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관한 과학 연구-특히 생물인류학 (biological anthropology or physical anthropology) 의 역사를 탐구한 과학기술학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 논의들을 검토한다. STS는 어떻게 사 회적, 문화적, 정치적 가치들이 과학 연구와 기술 혁신에 영향을 끼치며 이 같은 과학기술의 변화에 의해 다시금 사회, 정치, 문화가 새롭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접근을 꾀 하는 간학제적 학문 분야이다(KASTS 2014).

    생물인류학에 대한 STS 연구들의 검토를 통해, 이 글 은 인간 집단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의 전환이 생물학적 연구 방법론의 변화와 긴밀히 맞물려 이루어져 왔음을 확인할 것이다. 인간 집단이 차등적이고 구별되는 유형 들로 나누어져 있다는 인종 관념은 2차 대전 전까지 비 교해부학 및 생체계측학에 기초한 인간 다양성 탐구의 기초적인 개념적 토대였다. 그러나 전후 집단 유전학의 분자 방법론이 인간의 생물학적 탐구의 주요 도구로 부 상하는 일과 함께 통계적이며 고립된 생식 집단 (isolated reproductive population)이라는 인간 집단 다양성 개 념이 새로이 등장했다. 1990년대 이후 수많은 유전공학 기술들로 무장한 인류유전학자들의 작업은 우리에게 인 간 다양성을 이해할 한 가지 방안으로 생물지리적 조상 (biogeographical ancestry)이란 개념을 새로이 제시해주 고 있다.

    이 글은 이렇게 인간 다양성 개념과 연구 방법론 및 테크닉들의 상호 변천의 역사를 살피는 동시에, 현재 인 간 다양성 연구가 직면한 문제들 또한 드러낼 것이다. 인간의 유전다양성에 대한 본 사례 연구는 개념과 연구 방법론 및 기술의 상호 교차와 현재의 연구들에서 나타 나는 문제들을 드러냄으로써 분류의 문제와 관련해 생 물다양성 연구자들이 스스로의 연구를 메타적인 차원에 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비록 오늘날의 유전체 학 연구가 과거보다 인간 다양성에 대한 더 명료한 이 해를 가져다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적 객관성과 기 술의 진보에 대한 다소 순진한 믿음들로 인해 연구와 관련된 맥락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과거의 실수들로 미끄러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것 이다.

    본 론

    1.2차 대전 이후: 종에 대한 통계적 집단 개념의 등장과 분자유전학적 접근

    1)인간 종에 대한 통계적 집단 개념의 등장과 새로운 체질인류학

    제 2차 대전 이후, 인간 집단을 ‘유형론적(typological)’ 인종 범주를 사용해 탐구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옳지 않 다는 생각이 국제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다. 유형론적 인 종 개념은 인간 집단을 각 집단마다 구별되고 분리된 특 질의 집합이자 유형 (type)으로 보는 것으로, 18세기 린 네(Carl Linnaeus)부터 20세기 초중반 체질인류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 같은 유형론적 관점을 견지했다. 린네는 그의 자연사 분류 체계에서 인간을 영장류의 일 부로 분류하고, 피부색과 거주 대륙 차이에 따라 네 종류 의 인종(race) - 백인 (白人) 유럽인 (Homo Europæus), 적 인 (赤人) 아메리카인 (Homo Americanus), 갈인 (褐人) 아 시아인 (Homo Asiaticus), 흑인 (黑人) 아프리카인 (Homo Africanus) - 으로 하위분류했다(Marks 1995). 마찬가지로 20세기 전반 체질인류학 (physical anthropology)은 유형 론적 인종 관념에 입각해 특정 인종에 속하는 개인들의 신체를 측정하고, 측정값에 따라 인종들을 분류했다. 이 처럼 유형론적 인종 개념을 인간 집단의 생물학적 다양 성을 구별하는 단위로 사용하는 것은 당대의 인종주의 와 쉽게 결합했고, 유형론적 인종 개념과 밀착된 과학적 인종주의(scientific racism)는 유대인 및 집시 집단에 대 한 대량 학살을 야기했다 (Caspari 2003). 따라서 유형론 적 인종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과학적 인종주의와 동일 하다는 인식이 퍼졌고, 이를 지양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진 것이다.

    더불어 유형론적 인종 개념은 과학적으로도 유지되기 힘든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후반부터 유형론적 인종 범주를 사용한 체질인류학 연구들이 직면 한 과학적, 기술적 난제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라 는 사실이 점차 명백해졌던 것이다. 예를 들어 체질인류 학이 사용하는 인체계측학 (anthropometry)과 관련한 계 측자의 오류는 20세기 초부터 빈번히 제기되어 온 문제 였다. 두부지수(cephalic index)와 함께 인종 분류에 사용 된 비지수(鼻指數, nasal index)는 두개골에서 코의 높이 에 대한 코의 넓이의 백분율인데, 이 값을 얻기 위해 어 디서부터 어디를 측정할지를 확정하기가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정교하고 복합적인 캘리퍼 (caliper) 가 고안되고 사진술을 채택하거나 측정 위치를 확정하 려는 노력들이 이뤄졌지만, 문제는 쉽사리 해소되지 않 았다(Stepan 1982). 뿐만 아니라 인체계측 방법론 자체에 대한 회의 또한 제기되었다. 미국식 인류학의 기틀을 세 운 보아스 (Franz Boas)는 대규모 인체계측 조사를 통해 인종 분류의 핵심인 두개골이 환경적 차이에 의해 변할 수 있는 고정불변의 형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 께 당시 사용되던 인종계수 (racial coefficient)의 적절성 과 측정을 비롯한 각종 표준들이 문제로 대두했고, 이를 해결하려는 국제회의들이 개최되었으나 쉽사리 합의되 지 않았다(Barkan 1992: ch.3).

    다른 한편에서는 유형론적 인종 개념과 다른 방식으로 인간 집단 다양성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1930 년대 중반부터 도브잔스키 (Theodosius Dobzhansky), 마 이어(Ernst Mayr), 심슨(George Gaylord Simpson)을 위시 한 생물학자들이 멘델 유전학과 진화론을 통합한 신다 윈주의종합을 성취하면서 인간 다양성에 대한 대안적인 견해를 제시했는데, 이는 인종을 지리적 격리에 따라 생 식적으로 고립된 멘델집단(isolated Mendel population)이 자, 인간 종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의 아종(subspecies) 으로 보는 것이었다.

    이 같은 ‘통계적 집단 (statistical population)’ 개념은 1950년대 이후 인간의 생물학적 다양성 정의의 기초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아종을 집단이라 부를 것인지, 인종이 라 부를 것인지, 아니면 종족 집단 (ethnic group)이라고 부를 것인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후 의 주된 논쟁거리였지만 말이다 (Gannett 2001). 1950년 에 처음으로 제시되고 1951년과 1952년에 다시금 선언 된 인종에 관한 유네스코 선언문(UNESCO Statement on Race)은 이러한 인간 다양성의 새로운 정의에 대한 합 의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종래 인체계측학에 의존하던 체질인류학 역시 학문의 방향과 연구 방법론을 재정위 했다. 중요한 초점이 인종 분류에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탐구로 옮겨졌고, 워시번 (Sherwood Washburn) 을 위시한 연구자들은 ‘새로운 체질인류학(new physical anthropology)’을 선언하고 인류 진화의 과정을 탐구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을 제안했다. 그것은 “비교해부학적 인체계측 결과를 단순히 기술(description)하고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인간 분류만 수행해 오던 전통적인 연구 방 법과 결별하고 진화론의 자연선택에 따른 적응 (adaptation) 과 기능(function)의 변화를 살피는 데 초점을 맞추 는 것”이었다 (Washburn 1951). 이 시기부터 연구자들은 인간 다양성을 소진화 (microevolution)의 결과라고 보고 이에 대한 탐구를 다양성을 드러내는 과학 연구로 이해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Marks 1995).

    이와 함께 많은 체질인류학자들이 고인골 화석을 다 루는 고인류학의 영역과 영장류의 행동을 관측하는 영 장류학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현대인뿐만 아니라 고인골 과 영장류도 연구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 학자 들은 체질인류학 대신 생물인류학 (biological anthropology) 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들과 다른 측에 위치한 체질인류학자들인 하버드대학의 후튼과 그의 제 자 쿤 등은 여전히 인종 분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체 계측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혈액형 유전자 빈도 와 같은 유전형 연구도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Reardon 2006: ch.3).

    이 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간 집단 분류를 포기하느냐의 여부였고, 다른 하나는 분류를 수행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인간 다양성을 드러 낼 도구로 무엇을 택할 것이냐였다. 전자의 경우 비록 리 빙스톤 (Frank Livingstone)과 같이 인간 집단의 연속변 이(cline)를 강조하며 인간의 경우 집단 간 차이가 너무 사소하여 아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들이 있 었지만, 인류 기원 탐구로 방향을 전환한 ‘생물’인류학 자들을 포함한 많은 연구자들은 과거 유형론적인 형태 는 아닐지라도 인간 다양성을 탐구하기 위해 종족 집단 (ethnic group)이나 인종 등의 용어를 통해 생식적으로 격리된 고립 멘델집단이라는 정의를 활용하는 것이 필 요하다고 생각했다 (Montagu 1951: 239). 인류의 경우 집 단 사이의 교류가 너무 빈번하므로 분명하게 선을 그어 각 집단들을 구별할 수는 없고, 집단 차이라는 것은 오직 통계적인 차원에서만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 물학적 연구를 위해 이것에 인종 같은 이름을 붙여 분류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Reardon 2005).

    다음으로 후자의 인간 다양성 연구 도구의 문제와 관 련해서, 열렬한 집단 유전학 옹호론자들은 전통적인 인 체계측 혹은 표현형적 특질에 관한 자료보다 혈액형 연 구와 같은 유전학적 자료들에 훨씬 높은 신뢰도를 부여 하였다 (Montagu 1951). 1950년대 말 이후 이뤄진 체질/ 생물인류학에서의 노력은 보다 ‘객관적’이고 ‘확고한’ 유 전학 연구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의 경주였다.

    2)생물인류학의 ‘유전학화’: 분자진화론을 통한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의 성장

    1960년대 이후 혈액형 연구를 넘어 체질인류학을 ‘유 전학화’하려는 시도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이 바로 1963년 워시번의 주도로 오스트리 아 바르텐슈타인성 (Burg Wartenstein)에서 개최된 “분류 와 인간 진화(Classification and Human Evolution)” 컨퍼 런스였다. 여기서 생물학자 주커캔들(Emile Zuckerkandl) 은 체질인류학의 전통적인 형태론적 계측을 대신 할 대 안으로 분자적 방법에 기초한 분자 인류학 (molecular anthropology) 연구를 주창했다. 그는 인간과 고릴라 헤 모글로빈의 단백질 서열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형태론적 계측보다는 이렇게 헤모글로빈과 같은 분자적 차원에서 진화를 살펴보는 일이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컨퍼 런스에서 굿만(Morris Goodman) 역시 혈청학 연구를 통 해 인간의 진화 거리 (evolutionary distance)가 침팬지와 가장 가깝고 오랑우탄과 제일 멀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며 이렇게 분자적 연구를 통해 형태론적 계측에 기초해 이 뤄진 종래 종 분류를 재설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Washburn 1964).

    컨퍼런스가 이뤄지기 한 해 전에 주커캔들은 저명한 생 화학자 폴링 (Linus Pauling)과 함께 분자시계 (molecular clock) 가설을 제안했다 (Zuckerkandl and Pauling 1962). 이 가설은 형태학적으로는 많이 달라 보이는 종들 사이 의 단백질 진화율 (evolutionary rate) 유사성을 인지하고, 한 외군(outgroup) 종을 참조(reference)로 삼아 내군(ingroup) 종 사이의 진화율을 비교할 수 있다고 상정했다. 주커캔들과 폴링은 돌연변이 비율이 일정하다는 가정 하 에 고릴라와 인간의 알파 헤모글로빈과 베타 헤모글로빈 을 비교하고 1,100만 년 전에 이 두 종이 분화했다는 값 을 도출했다. 주커캔들은 비록 단백질 단위의 연구를 수 행했지만, 유전자 단위와 같은 분자 수준에서의 진화 연 구가 환경적 왜곡 등에 덜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형 태론적 특징들보다 계통 발생 탐구에 유용하다며 분자 진화 탐구를 주장했던 것이다(Sommer 2012: 215).

    이러한 분자진화론에 대한 반응은 양분되었다. 상당수 의 생물학자들이 이에 반대했는데, 특히 신다윈주의종합 을 이끈 도브잔스키, 마이어, 심슨 등이 비판적 입장의 선 봉에 섰다. 이들은 영장류 분류 및 진화의 문제는 분자 적 차원이 아니라 더 고등하고 복잡한 유기체 차원에서 연구해야된다고 주장했는데, 왜냐하면 유기체가 바로 자 연선택의 단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커캔들과 폴링의 작업이 신다윈주의종합의 핵심 메커니즘인 자연 선택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유기체 생물학을 분자생물 학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라고 보고 반대했으며, 이후 몇 년에 거친 긴 논쟁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윌슨(Edward O. Wilson)은 이를 ‘분자전쟁 (molecular war)’이라 칭하 기도 했다(Wilson 1994).

    이 같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주커캔들의 ‘분자인류학’ 주장은 체질인류학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새로운 체 질인류학을 이끌던 인물이자 1963년 바르텐슈타인성 컨 퍼런스를 조직했던 워시번은 분자적 접근이 인류학을 과 학적으로 확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워시 번은 자신의 UC 버클리 인류학과의 제자들 가운데 화학 을 전공한 새리치 (Vincent Sarich)를 비롯해 수많은 인 류학도들을 같은 대학 분자진화 실험실을 이끄는 생화학 자 윌슨(Allan Wilson)에게 보내 그의 지도를 받게 하였 다 (Sommer 2012: 218-219). 또 이와는 별개로 1960년대 중반부터 분자유전학적 방법을 강하게 옹호하는 중견 인 류학자들이 인류학적 유전학 (anthropological genetics)을 주창했다. 이들은 인류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던 비서 구 민족 가운데 작고 생식적으로 격리되며 문화적으로 균질적인 집단들을 탐구하는 주요 도구로 분자 표지자 (molecular marker)를 사용하여 탐구하길 주장했다(Crawford 2008: 9).

    한편, 1967년 윌슨과 새리치는 사람과 침팬지의 혈청 단백질 알부민을 비교했다. 그리고 이 결과를 해석하는 데 주커캔들과 폴링의 분자시계 가설을 사용하여 인간 과 침팬지의 종 분화가 400 내지 500만 년 전에 일어났 다는 결론을 도출했는데, 이는 화석 연구에 따른 기존의 표준적인 해석이 1,000 내지 3,000만 년 전이었음을 고 려한다면 매우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Sarich and Wilson 1967). 새리치와 윌슨은 이 같은 종 분화에 대해 분자시 계 가설 및 분자 표지자들을 사용한 연구를 밀고 나갔 으며, 1980년대에 이르면 윌슨은 분자시계 가설을 미토 콘드리아 DNA에 적용한 연구를 심화했다. 1987년에도 자신의 실험실의 제자들과 함께 5 개의 서로 다른 지리 적 집단에서 온 147명의 미토콘드리아 DNA (mtDNA) 분석을 통해 현대 인간 종이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모계 공통조상을 갖고 있다는 미토콘드리아 이브 (Mitochondrial Eve) 가설을 제시했다 (Cann et al. 1987). 이 같은 작업 가운데 다른 지리적 지 역에 거주하는 인간 집단 사이의 mtDNA 다양성은 인간 집단 이주 탐구를 위한 새로운 인류학적 표지자(anthropological marker)로 부상했다. mtDNA는 일반 핵산DNA 와 달리 DNA재조합 과정 없이 모계유전 할 뿐만 아니 라 높은 돌연변이율을 보여 집단 병목현상 (population bottleneck)이나 창시자 효과 (founder effect)와 같은 진 화적 사건들을 검토하기 적절한 대상으로 높게 평가받 았던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인간 종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단 백질, mtDNA와 같은 분자적 수준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시각이 일반화되었으며, 이 같은 인간 다양성에 대한 분 자적 관점으로의 전환은 연구 방법론 및 테크닉의 변화와 긴밀하게 관련되었다. 분자 인류학이 태동하게 된 1963 년 컨퍼런스에서 주커캔들과 굿만은 모두 당시 한창 발전 을 거듭하던 겔 전기영동법과 크로마토그래피 (chromatography) 덕분에 가능해진 펩타이드 질량지문법(peptide mass fingerprinting)을 사용하여 분자인류학적 연구로의 전환을 주장할 수 있었다 (Hagen 2010: 703). 또한 1980 년대 윌슨의 mtDNA 연구 역시 그 당시 새로이 등장한 제한효소절편길이다형 (Restriction Fragment Length Polymorphism, RFLP) 분석을 통해 DNA 서열의 다형성을 직 접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것이었다(Cann et al. 1987).

    한편, 자연과학 영역 바깥의 연구자들에게 생물인류학 의 ‘유전학화’는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의 종말을 선고하 는 것처럼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르원틴 (Richard Lewontin) 의 연구였다. 르원틴은 코카서스인종, 아프리카인 종, 몽골인종, 남아시아 원주민 인종, 아메리카 원주민 인 종에 관한 15 개의 혈청 단백질의 유전자좌(polymorphic locus)에 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종’ 집단 간 유전 학적 변이보다 집단 내 변이가 더 크다는 연구결과를 도 출했다(Lewontin 1972). 이 연구는 ‘유형론적 인종’ 집단 분류가 적절치 않음을 증명했으나, 인간 집단 사이의 유 전적 변이를 탐구하는 작업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것임 을 시사 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연구자 들은 인간 사이의 차이는 연속변이적이기에 인간 집단을 통계적인 대상으로 밖에 다룰 수 없음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사용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체질 인류학과 밀접한 문화인류학자들을 포함한 사회학자들, 철학자들과 같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이러한 유형론적 인종 개념의 기각을 생물학이 인간 집단의 생물학적 다 양성 연구가 적절치 않음을 입증했다고 오해했다. 이러한 오해 때문에 1990년대 유전체학으로 무장한 집단 유전 학자들이 ‘고립된 인간 집단 (isolated human population)’ 들인 토착 민족(indigenous people)들을 탐구한다고 선언 했을 때나, 인간 집단이 대륙 구분에 상응하는 유전적 무 리(cluster)로 구별된다고 주장했을 때, 20세기 초의 인종 주의 과학이 재현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Reardon 2005: ch.4).

    2.게놈 그 이후: 생물지리적 조상과 유전체학의 부상

    1)인간유전체다양성프로젝트 (Human Genome Diversity Project)

    1980년대~1990년대 초는 분자생물학의 기술적 혁명 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였다. RFLP 분석과 중합효소연쇄 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PCR) 덕에 유전자를 분 리 및 증폭하고 염색체 내 위치를 파악하는 작업이 가능 해졌고, 암을 비롯한 질환 관련 유전자들이 발견되었다. 물론 1977년 생화학자 생어 (Frederik Sanger)에 의해 개 발된 생어 시퀀싱 기법(Sanger sequencing)이 발전을 거 듭한 것도 위의 작업을 현실화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대규모의 인간 유전자 서열분석(sequencing) 을 수행해야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 1991년 인간유전체프로젝트 (the Human Genome Project)라는 거 대생물학(big biology) 사업이 미 에너지부(DOE)와 국립 보건원(NIH)의 주도하에 1억 3500만 달러의 지원을 받 으며 시작되었다(Cook-Deegan 1994).

    이 같은 생명과학 전반에서 일어나는 혁명의 기운은 인간의 생물학적 다양성 연구에도 영향을 끼쳤다. 인간 유전체프로젝트와 같이 생물학의 거대과학 프로젝트가 출범하자, 많은 생물학자들이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에 대해서도 동일한 작업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인 간유전체프로젝트의 결점을 보완해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주창하기 시작했 던 것이다. 1993년 인간유전체다양성프로젝트 (Human Genome Diversity Project: 이하 HGDP)는 이러한 맥락에 서 등장한 것이었다.

    HGDP를 이끈 과학자들은 집단 유전학자들로, 그 선 봉에는 앞서 언급한 UC 버클리의 윌슨과 스탠포드대학 의 카발리-스포르자(Luigi Luca Cavalli-Sforza)가 있었다. 카발리-스포르자는 종래 생물인류학 연구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활동하던 보드머(Walter Bodmer)와 함께 혈 액형을 이용한 인간 집단 분류 등을 수행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유전학자들 및 인류학자들과 함께 아프리카 피그미족의 불멸화세포주(lymphoblastoid cell lines)를 확립하는 활동을 진행했었다. 1990년대부터 는 부계 조상에게만 전달되는 Y 염색체의 비암호화부위 (non-coding region Y: NRY)에 분자시계 가설 연구를 적 용하여 모계 조상에만 적용되던 mtDNA 연구의 부족함 을 채우는 기원 및 이주 연구를 수행하였다 (Stone and Lurquin 2006).

    카발리-스포르자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유전체 프로젝트가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오류’를 품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이는 인간유전체프로 젝트 진행자들이 마치 인간 한 명의 유전체 전체를 해독 하면 인간 종 전체에 대한 유전체가 해독되는 것처럼 생 각한다는 것이었다. 자연 생물다양성 논의가 부상하던 시 점에서, 카발리-스포르자를 위시한 인간 집단 유전학자들 은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에 대한 정보 확보 및 보호를 위 한 범국제적 차원의 과학 프로젝트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외쳤으며, 그 결과 HGDP가 출범하고 인간 생물다양성 (human biodiversity)이란 용어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 작했다. 1991년 카발리-스포르자와 동료들은 Genomics 에 HGDP를 제안하는 글을 기고했으며, 같은 해 HUGO (Human Genome Organisation)의 120만 달러를 기반으로 파일럿 연구를 실시했다 (Cavali-Sforza et al. 1991). 그리 고 1992년에 EU의 지원 하에 “유럽인 집단의 생물학적 역사 (the Biological History of European Populations)” 연 구 과제를 시작했고, 1997년부터는 미 연방 정부로부터 후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전개했다(M’Charek 2005: 5-7).HGDP의 목표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간 집단들이 어떻게 다른 대륙으로 이주하고 확산해나갔는지를 확인 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집단들의 유전적 패턴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한 연구 대상의 정의 와 샘플링 방법을 두고 HGDP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두 인물 - 카발리-스포르자와 윌슨 -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 졌다. 카발리-스포르자는 언어 (language)와 격리의 정도 를 기준으로 정의된 200개의 “고립된 토착 부족 (isolated aboriginal tribes)”들과 같이 집단 (population)을 기준 으로 삼고, 이 집단에 속하는 개인을 각기 50명을 뽑아 이들의 핵산 D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비교하자고 제안했다. 카발리-스포르자의 제안은 지구화에 따른 이 주 등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격리된 유전적으로 균질적인 집단이 존재하며, 이러한 집단을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에 따라 구별해 낼 수 있다는 전제에 기초했다(Reardon 2001: 362-363).

    반면 mtDNA 연구의 권위자였던 윌슨은 집단에서 얻 어낸 핵산 DNA 서열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개인 (individual) 을 기준으로 삼아 개인의 mtDNA를 분석하는 것이 유전적 다양성을 탐구하는데 훨씬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들을 선정하는 방법으로 언어 사용 에 따라 유전적 집단을 분류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균질적인 공간을 분배하여 그 영역에 존재하는 토착민 들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시료를 채취하는 지리적 격자 (geographical grid) 접근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인간 집단에 대한 선험적인 가정 때문에 집단 에 대한 자의적이거나 편향적인 분류가 반영되는 것을 배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ardon 2001: 363-364).

    그러나 특정 지역의 개인을 무작위로 추출하는 지리적 격자 접근을 따를 경우 설정된 50~100마일의 격자 내 에 토착 집단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 라, 토착 집단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개인들이 선정될 위험이 상존했다. 예를 들자면, 짐바브웨 중앙 격자에서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온 관광객이 뽑혀 그의 DNA 분석 결과가 짐바브웨 중앙 지역을 대변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었다(Reardon 2001: 364). 이러한 문제들을 두고 벌 어진 논의 결과 두 접근의 ‘타협’ 혹은 ‘절충’ 안으로 카 발리-스포르자가 제시한 언어 정의에 기초한 집단 분류 를 기준으로 삼되, mtDNA나 핵산DNA 서열분석만 하는 대신 이 둘 모두가 가능하도록 52개의 토착집단의 불멸 화세포주가 수집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Cavalli-Sforza 2005).

    이후 Rosenberg et al. (2002)은 HGDP의 성과물을 토 대로 상염색체의 전 부위에 걸쳐 377개의 미세부수체 표지자 (microsatellite marker)를 검토한 결과 각 집단의 유전적 차이가 극도로 적지만, 각 집단의 유전적 구조에 따라 6개의 유전적 무리 (genetic cluster)로 구별되며, 이 가운데 5개의 유전적 무리가 대륙과 같은 주요 지리적 구별과 상응한다고 보고했다. 이후 수많은 연구자들이 HGDP의 불멸화세포주를 활용해 특정 SNP의 대립인자 빈도에 대한 지리적 분포도를 탐구했고, 로젠버그 및 동 료들과 유사한 결론들을 도출했다. 이 같은 과학적 연구 의 흐름은 지리적 조상이라는 범주가 생의학 영역에서 인간 집단의 유전학적 다양성에 관심이 증대되는 가운 데 인종을 대신하여 ‘과학적’으로 적합한 개념이 되어줄 단초를 마련했다.

    2)후기유전체학 시대의 생물지리적 조상 개념의 등장

    2001년 인간유전체프로젝트의 초안이 제시되면서 모 든 인간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99.9% 동일하지만, 0.01% 의 차이에 의해 질병이나 특정 약물에 대한 유전적 감수 성(genetic susceptibility)의 차이가 발생한다며 이러한 차 이에 주목하고 이렇게 인간의 건강, 질병 및 약물 반응 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변이를 연구하여 ‘맞춤의학 (personalized medicine)’을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 었다. 그리고 맞춤의학을 위한 연구 플랫폼으로 유전변 이의 공통 패턴들을 드러낼 인간 유전체의 하플로타입 (haplotype)들을 맵핑하는 국제 햅맵프로젝트 (International HapMap Project)가 출범하였다. 이와 함께 인간 집단 간 질병 및 건강과 관련한 유전적 다양성 관련 연구들 이 범람하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 인종 차이에 관한 유 전체의학 연구가 급증했다(Hyun 2014: 88-89).

    이 가운데 인종 분류 - 특히 미국의 인구 통계에서 사 용하는 인종/종족 분류 - 를 채용한 생의학 연구들이 급 증하자 인간 유전학과 의학 연구에서 사회적 통계 분류 법인 인종 분류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 이 과학계 내외부에서 나타났다. 그 결과로 미 국립인간 유전체연구소 (NHGRI)는 Race, Ethnicity, and Genetics Working Group을 꾸려 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에 인종이나 종족이라는 용어가 종종 사회적 편견 이나 해당 집단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양산하고, 사회 적 차별에 의해 야기되는 건강 불평등의 문제를 생물학 적 차이의 문제로 환원하는 일들이 벌어지므로 이러한 분류의 사용을 지양하기를 제안하는 리뷰를 게재했다. 그리고 인종 분류 대신 연구 대상의 유전형에 대한 생 물지리적 조상 (biogeographical ancestry)을 평가하는 것 을 대안으로 제시했다(REGWG 2005: 526).

    유형론적 인종과 통계적 집단 개념을 이어 새로이 인 간 유전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생물지리적 조 상 개념은 조상정보표지자 (Ancestry Informative Markers, AIMs)라는 기술의 등장과 함께 출현했다. 생물지리 적 조상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 미 국인류유전학회에서 펜실베니아주립대의 쉬라이버(Mark Schriver)와 그의 실험실의 제자들의 발표였는데, 여기서 이들은 생물지리적 조상을 종족성(ethnicity)을 생물학적 으로 결정하는 측면이자 연구 대상이 되는 집단이 갖는 특징적인 대립 인자 빈도 (allele frequencies)를 사용하여 평가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는 개인의 조상 ‘혼 합(admixture)’의 정도 혹은 조상의 비율의 정도를 측정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2002년 쉬라이버는 개인이 특정 조상 집단(당시 사용 가능한 것은 아프리카인, 아프리카 계 아메리카인, 유럽인, 유럽계 아메리카인, 히스패닉, 동 아시아인, 남아시아인 조상이었다)에 대해 갖는 조상 혼 합 정도(Ancestry Admixture Ratios)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으로 AIMs를 사용하길 제안했는데, 이는 다른 지리 적 지역 집단 사이의 차이를 구별해주는 SNPs들이었다 (Gannett 2014: 175-176).

    생물지리적 조상은 해당 개인의 ‘인종’을 판별하는 것 이 아니라 아프리카 출신 조상이나 유럽 지역 출신 조 상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판별하는 것으로, 이 개념 은 인간 집단의 유전적 무리(genetic structure)가 대륙적 분포에 상응한다는 Rosenberg et al. (2002) 등의 연구와 함께 지리적 차이를 통해 보다 중립적인 형태로 인간 집단의 유전다양성을 드러내고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 이 강화되도록 이끌었다 (Prugnolle et al. 2004). 게다가 일부 연구자들이 이 같은 생물지리적 조상을 살피는 연 구가 전통적인 유형론적 인종 개념이 적절치 않음을 드 러낸다고 보고하면서, 생물지리적 조상은 중립적으로 인 간 집단 간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도구로 인식되기 시 작한 것이다. 물론 생물지리적 조상 개념이 집단 간 유 전적 변이의 차이가 매우 사소함에도 불구하고 각 조상 집단을 유전적으로 확고히 구별되는 것으로 분류하는 데 서 유형론적 인종 개념과 그리 거리가 멀지 않다고 비 판하는 연구자들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Barbujani 2005; Gannett 2014; Hochman 2014).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생물지리적 조상 개념의 출현 역시 1980년대에 시작된 PCR/RFLP/서열분석 기술 혁명에서 인간유전체프로젝 트를 거쳐 축적된 생명정보학 기술과 HGDP를 포함한 지속적인 유전체분석 사업들을 거쳐 확립된 대규모 데 이터들의 축적의 결과였다.

    3.현대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의 미끄러짐들

    본문에서 우리는 연구 테크닉이 인체계측에서 혈액형 분류로, 나아가 단백질 분석에서 유전체 분석으로 변화하 는 양상들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은 테크닉의 발전은 단 순한 기술적 진보와 과학적 객관성의 증대라는 과학에 대한 상식적 관점으로 읽히기 쉬운데, 기술과학 (technoscience) 의 역사는 사실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Latour 1987). STS 연구자들은 기술의 발전이 단선적인 방향으 로 ‘진보’한다기 보다는 역사적인 맥락에 따라 전개되는 ‘진화’의 산물로, 과학적 객관성을 역사적 상황과 정해진 사회적, 물질적 제약들 내에서 만들어지는 과학의 ‘인식 론적 덕목 (epistemic virtue)’이자 때때로 과학 논쟁에서 상대방을 논박할 때 사용하는 도구인 동시에 자원이 되 기도 하는 대상임을 강조했다 (Gieryn 1983; Geels 2002; Daston and Galison 2007).

    대표적인 사례로 분자인류학 혹은 인류학적 유전학(anthropological genetics)의 유전자 개념을 살펴보자. 1965년 주커캔들과 폴링은 헤모글로빈이나 유전자와 같은 “분자 들이 진화에 대한 역사적 사료들(molecules as documents of evolutionary history)”이라고 주장했으며, 유전자는 “환 경적 왜곡”과 같은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온전 히 인간 진화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단언했다 (Zuckerkandl and Pauling 1965). 이는 유전형이 표현형을 지배하 며 더 고등한 원리라는 전통적인 환원주의 형태의 분자 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 DNA→RNA→Protein) 를 가정하는 것인데, 이러한 환원론적 시각은 인류학적 유전학 영역에서 여전히 견지된다. 현대의 많은 인류학적 유전학자들은 유전자의 비암호부위 (non-coding region) 혹은 정크DNA가 질병 등 다른 외부의 환경적 압력에 의해 발생한 유전적 변이와 무관하고 중립적이기에 인 간 집단에 대한 유전적 다양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상이며, 그렇기에 이를 연구용 분자표지자로 사 용하자고 주장한다(El-Haj 2012: 58).

    그러나 인간유전체프로젝트 이후 유전자는 생각보다 훨씬 적은 정보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 그 자체 의 담지자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으며, 세포, 조직, 유 기체 전체에서의 관계 속에서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하고 살피려는 총체론적 시각이 일반화되었다 (Müller-Wille and Rheinberger 2012: 211). 만약 현재의 유전학 패러다 임에 비춰본다면 인류학적 유전학의 유전자 개념은 진 보하지 않은 낡고 뒤떨어진 것이자 객관적이지 않은 것 으로 이해될 것이다.

    Sommer (2008)는 과학 활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서는 진보와 객관성에 대한 상식을 뒤로하고 분과마다 독특하고 국소적인 과학적 개념을 갖고 있음을 이해해 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 유전다양성을 탐구하 는 인류학적 유전학에서는 유전자가 역사적 정보를 담 고 있다는 독특한 유전자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며 여기 에 ‘인류학적 유전자(anthropological gene)’란 이름을 붙 였다. 현대 유전학의 시각에서 보기에 아무리 낡고 뒤떨 어졌어도, 이러한 인류학적 유전자 개념은 인간 다양성 연구에 분자기술이 사용 가능하게 되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 그리고 이 개념을 통해 이루어진 분자기술의 도입은 인류학적 유전자 개념을 담지한 분자인류학 연 구가 ‘분자전쟁’ 등을 성공적으로 이겨내고 과학적 객관 성을 가진 것으로 자리잡게 도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보면 지난 백여 년 간의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를 보다 엄밀한 분자 분석법으로의 단선적인 기술 진보와 보다 나은 과학적 객관성의 획득으로의 과정으로 보는 단순 한 시각은 상당히 문제적이다. 이 같은 평면적인 관점 대신, 인간 집단의 유전학적 차이를 탐구하는 연구들을 둘러싼 여러 맥락들을 면밀히 살펴 볼 경우, 이 연구를 ‘위기’에 빠트리는 문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3절에서 강조되었듯이 전통적인 유형론적 인종 개념 은 1950년대 이후 통계적 집단 개념으로 대체되고, 인간 집단에 대한 분류보다는 인류 기원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 영역은 유형론적 인종 개념과 이 별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도브 잔스키의 경우와 같이 과학자들은 ‘인종(race)’이라는 용 어 자체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종종 이 용어를 고립 멘 델집단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해왔다는 사실이다 (Lipphardt 2014). 그러나 이렇게 인종이란 어휘에 고립 멘델 집단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부여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다시 유형론적 방식으로 이 어휘를 사용하는, 생물철학 자 켈러(Evelyn Fox Keller)가 유전자(gene)를 두고 지적 한 언어의 미끄러짐이 발생한다(Keller 2010).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까닭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배경들로 (1) 현대 인간 유 전다양성 연구들이 ‘맞춤의학 (personalized medicine)’ 혹 은 ‘층화의학(stratified medicine)’을 목표로 이뤄지는 생 의학(biomedicine) 연구들과 교차하며 둘 사이의 경계가 빈번하게 흐려진다는 것과 (2) 상업화된 인간 유전다양성 서비스들이 증대하는 것, (3) 인종과 종족 개념이 구분 없 이 뒤섞여 사용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4) 역사적 내러티 브와 같이 ‘자연과학’ 바깥의 영역의 논의들이 채용되는 일이 간과되는 것을 들 수 있다.

    1)생의학 연구와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의 흐릿한 경계

    인간 집단 기원과 다양성에 대한 연구들은 종종 생의 학에서 인종 집단을 사용한 유전적 변이와 질병의 상관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채용한다. 과거 인간 집단 변이 연구는 대부분 인간 이주의 역사를 재구성하거나 기타 지리적 거리와 유전적 변이 사이의 상관관계를 탐구하 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인간유전체프로젝트 이 후 ‘맞춤의학’이 목표로 설정되면서 인간의 유전적 다양 성을 의학적 목적으로 연구하는 생의학 연구들이 급증하 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이 둘이 뒤섞이는 일이 점차 빈 번해져 왔다(Lee et al. 2008: 5). 그런데 생의학 연구들에 서 인종 범주를 사용하는 것은 집단에 대한 분류 그 자 체가 목적이 아니라 의료 진단 및 질병 치료의 집단 차 이를 확인하기 위한 ‘도구 (tool)’이자 피험자 집단을 규 정하기 위한 ‘대리물 (proxy)’에 가까운 것이다. 생의학 연구들은 인종 범주에 대한 불명확한 정의 하에 다양한 방법들 - 미 인구센서스 분류, 피험자의 자기 확인 (selfidentifying) 에 따른 분류, 이름에 따른 분류, 조상에 따른 분류 등 - 을 따라서 집단들에 이름을 붙인다 (Whitmarsh and Jones 2011). 그러나 일부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들 에서는 이러한 생의학 연구들의 특성이 간과되며, 그 결 과 상당히 자의적인 인종 분류에 따라 이뤄진 자료들이 특정 인간 집단에 대한 정보로 치환되고 오해될 가능성 이 발생한다.

    Hunt and Trusedell (2014)은 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와 Nature Genetics를 비롯한 주요 인간 유전학 저널들에서 2006년에 출판된 논문들을 검토하고, 이 가 운데 인간의 유전적 다양성에 관한 42건의 논문들을 살 폈다. 그리고 이 논문들이 코카서스인종, 백인종, 아시아 인, 히스패닉 등의 인종 분류를 사용했으며, 이것들이 피 부색이나 언어, 종교, 지리적 차이, 국가 등과 같은 요인 들로 매겨진 상당히 자의적인 범주들임에도 불구하고 다 른 유전적 차이를 지닌 집단들을 가리키는 과학적 분류 처럼 다루어짐을 지적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아시아 인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분비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들에 서도 발견된다. 테스토스테론 분비와 관련해 인간 남성 의 생리학적-유전학적 다양성을 탐구하는 연구들은 전립 선암 표지자를 찾는 생의학 연구와 도핑 테스트와 관련 된 법의학 연구 결과들을 참조하고 인용했는데, 그 과정 에서 상당히 자의적인 분류에 기초한 ‘동아시아인 (East Asian)’이라는 범주를 마치 다른 인간 집단들과 확고하 게 구별된 생물학적 특징을 지닌 개별 인종에 대한 정 보처럼 다루게 되었다(Hyun 2012).

    2)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의 상업화

    현재 조상 기원에 대한 유전자 검사 (genetic ancestry test 혹은 genetic genealogy test)들이 상업화되고 이 검사 들의 마케팅의 수단으로 인종이라는 용어가 채용되는 상 황 또한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자들이 유형론적 해석에 빠지도록 이끈다. 비록 한국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 지만, 구미지역에서는 mtDNA나 Y염색체 유전자 분석, 혹은 AIMs 분석을 통해 개인의 조상 기원을 찾는 검사 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유대인, 미국 원주민, 아프리 카인 등의 조상 기원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가 상용화 되어 있으며, 많은 경우 해당 결과는 마치 검사 참여자 의 ‘인종’을 유전학적으로 표지해주는 것처럼 이해된다 (Tellbar 2014).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의 상업화 과정에서 ‘생물지리 적 조상’이라는 용어를 통해 인종주의적 해석을 막으려 고 하는 연구자들 또한 유형론적 인종 개념으로 미끄러 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생물지리적 조상 개념을 제안하고 AIMs를 고안한 쉬라이버이다. 그 는 2009년에 폐업한 DNAprint Genomics사에서 일하면 서 AIMs를 사용한 AncestrybyDNATM 검사를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했었다. 그가 참여한 이 검사에 관한 광고는 생물학적 인종과 생물지리적조상 개념을 동일한 것으로 서술하며 구매자의 인종 혼합 정도를 알려줄 수 있다고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인종, 아프리카인종, 아메리카 원주민인종, 아시아인종처럼 19세기 블루멘바흐 이래 상 식처럼 자리 잡은 유형론적 인종 도식을 생물학적 실재 처럼 진술했다 (Tellbar 2014: 27). 인종주의적 해석을 지 양하는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자가 상업적 영역으로 이 동하면서 다시금 유형론적 해석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3)인종/종족 개념의 오용

    인간 유전학 연구들에서 인종 (race)과 종족(ethnicity) 개념이 구별 없이 오용되는 경향 또한 이렇게 집단이나 조상이라는 용어가 유형론적으로 사용되는 상황과 관련 된다. 1930년대에 반인종주의 생물학자로 유명한 헉슬리 (Julian Huxley)가 나치의 과학적 인종주의에 반대하면서 생물학적 인종 (race) 개념과 문화적 종족 (ethnicity) 개념 을 구별한 이래, 인간 유전학 연구에서 종족이라는 분류 범주는 인종주의의 오명을 쓴 인종이라는 개념 대신 널 리 사용되어 왔다(Huxley et al. 1936). 그러나 3절에서 언 급했듯이 인종 개념 자체는 포기되지 않았으며, 종족 집 단 (ethnic group)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길 주장했던 반인 종주의 인류학자 몽태규조차 이를 생물학적인 대상을 가 리키는 것으로 사용하였다(Montagu 1951).

    이 같은 영향 탓인지 생의학 관련 유전체학 연구뿐만 아니라 현대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에서도 종족이라는 용 어가 종래 담지한 정의인 ‘문화적으로 구별되는 인간 집 단’이라는 정의가 아니라 생물학적 차이를 지닌 인간 집 단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최근 종족 차이 (ethnic differences) 에 대한 유전체학적 연구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 연구들은 집단 간 문화적 차이가 가져오는 유전자 발현 이나 문화와 유전적 연관 사이에 대한 연구들을 수행하 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인종 개념들인 코카서스인, 아 시아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과 같은 집단을 지칭하는 데 종족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이들 사이의 대사 활동이 나 약물 반응 등의 유전학적 차이를 드러내는데 몰두한 다(현재환 2012). 이 같이 종족이 인종 개념과 관련해 정 치적으로 안전한 대리물(proxy)로 가정되고 남용되는 상 황은 연구자들이 손쉽게 유형론적 인종 관념으로 미끄 러지도록 이끈다.

    4)역사적 내러티브 사용의 비가시화

    현재 일부 인간 다양성 연구자들은 인간 종 내 유전다 양성을 탐구하는데 매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분자생물 학적 방법만이 이용되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HGDP 를 이끈 카발리-스포르자를 위시한 집단 유전학자들은 오로지 분자유전학적 기법에만 기초해서 인간 집단의 기 원을 탐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등에서 도출된 자료들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avalli-Sforza 2001). 이는 사실 다른 인류학적 유전학 연구들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문제이며, 실제로 인간 집단들의 이주와 기원에 대한 여러 유전학적 연구들은 이렇게 관련 인간 집단에 대한 기존 역사학계 등에서 제 기된 역사적 내러티브들을 채용해 자신들의 연구를 전개 한다. 이러한 것들을 가리켜 Sommer (2010)Lipphardt (2014)는 생물학적 역사 (biohistory) 혹은 생물학적 역사 내러티브(biohistorical narrative)라고 명명했는데, 일부 인 간 집단 기원 연구들은 이러한 생물학적 역사를 채용한 사실을 지우고 순수하게 ‘자연과학적’ 사실에만 기초해 도출된 연구결과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옥스퍼드대학의 타일러-스미스(Chris Tyler-Smith)와 동료들이 2,123명의 아시아인 남성의 Y 염색체 내 32개의 유전자 표지자들을 분석하여 도출한 주장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태평양 연안에 서 카스피해(海) 사이의 16개의 인간 집단들에게서 비교 적 높은 빈도로 나타난 변이 패턴이 1000여년 전 몽골 에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이 유전자 변이 패턴을 갖고 있는 남성들은 모두 이 넓은 지역에 거대 제국을 건설하고 많은 아이들을 낳았던 칭키즈 칸(1162~1227) 과 그의 남성 친지들의 후손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Zerjal et al. 2003). 사실 Y 염색체 분석 결과 얻어진 최근공 통조상(Most Recent Common Ancestor)의 시기는 95% 신 뢰도에 700~1300년인데, 600년이라는 긴 시간적 격차 가운데 해당 유전 변이 패턴이 칭기즈 칸의 것이라는 증 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El-Haj 2012: 234-241). 이러한 역 사적 세부사항을 담고 있는 주장은 Y 염색체에 대한 분 자분석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일반적인 역사적 내러티브들을 끌고 와서 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 내러티브를 차용하여 유전학적 증거를 구성함에도 불구하고, 타일러- 스미스와 동료들은 그러한 점에 대해 분명히 밝히지 않 은 채 “몽골인들의 유전학적 유산 (the genetic legacy of the Mongols)”에 대한 발견을 온전히 분자연구방법에 의 해서만 획득한 것처럼 서술한다.

    인간 집단의 이주와 기원에 관한 인류학적 유전학 연 구가 항상 ‘가설적인’ 역사적 증거들을 비롯한 여타 증거 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이것들에 기초한다는 점을 인 정하고 이를 명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각 증거들 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통해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 적인’ 연구가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는다면 문제적인 역 사적 논의들을 인용해 만들어진 인류학적 유전학 연구들 이 다시 해당 역사적 논의를 주장하는 역사가들의 입장 을 ‘자연과학적’으로 정당화해주고, 그렇게 정당화된 역 사적 논의가 어떠한 비판도 없이 인류학적 유전학 연구 에 재인용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문제 는 이미 유대인 이주의 역사라는 역사학적으로 매우 논 쟁적인 주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El-Haj 2012). 인 간 유전다양성 과학과 기술의 맥락적 성격을 이해한다 면, 기술적 진보와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순진한 가정을 유지하여 이러한 오류들로 미끄러지는 대신, 그것이 ‘가 설적인’ 역사 내러티브를 이용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 어 보다 주의 깊고 ‘합리적인’ 연구가 가능해질 것이다.

    결 론

    이 글은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를 사례로 삼아, 생물다 양성 개념과 연구방법론이 변화하고 상호 교차하는 과정 에 관한 STS 연구들을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연 구방법론이 인체계측에서 혈청학 연구로, 단백질 연구로, mtDNA와 Y염색체 유전자 분석 연구로, 나아가 AIMs 로 변화하는 과정과 함께 인간 집단에 대한 개념이 유형 론적 인종 개념에서 통계적 집단 개념으로, 그리고 현재 에 이르러 생물지리적 조상 개념으로 전환되어 왔음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이러한 연구방법론과 개념적 전환에 도 불구하고 기술적 진보와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순진 한 가정으로 인해 인종주의와 쉽게 결합하는 유형론적 해석으로 미끄러지는 상황들을 확인해 보았다. 먼저 실 용적 용도로 사용되는 생의학 연구의 인종 분류가 ‘확고 한’ 유전학적 분류처럼 다양성 연구로 흘러들어오는 일 이나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가 상업화되는 상황, 그리고 유전다양성 연구 가운데 종족 개념이 오용되어 왔던 맥 락 등이 인간 유전다양성 과학자들을 유형론적 인종 개 념에 빠지도록 이끌고 있다. 더불어 과학적 객관성과 기 술 진보에 대한 순진한 가정으로 인해 일부 인간 유전 다양성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들이 ‘가설적인’ 역사 적 자료들을 활용한다는 점을 지우거나 간과하며, 그 결 과 문제적인 역사적 주장들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생물 학적 사실로 둔갑한다.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에 대한 이러한 STS적 분석은 자연 생물다양성 연구자들의 과학 활동을 반추해볼 기회 를 제공한다. DNA 바코딩 (DNA barcoding) 기술을 이용 해 생물 종을 동정하고 분류하는 사례를 살펴보자. 2003 년 생명바코드이니셔티브(the Barcode of Life Initiative)가 실시되면서, 미토콘드리아 CO1 (cytochrome oxidase subunit 1) 유전자를 분자 표지자로 활용하는 DNA 바코딩 기술이 종 동정(species identification)을 위한 새로운 도 구로 자리 잡아 왔다. 이 가운데 일부 과학자들은 DNA 바코딩 기술을 사용해 전통적인 형태학적 측면에 몰두 해서 위기에 처한 분류학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어떠한 편견도 개입되지 않은 새로운 분류 체계를 만들 수 있 다고 주장해왔다.

    주장해왔다. 그러나 바코드 자체만으로는 해당 대상이 어떤 분류 하에서 어떤 종에 해당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결국 형태론적 특징들을 다루는 전통적인 분 류학을 필요로 한다. 사실 많은 DNA 바코딩 연구들은 종래 린네식 분류 체계에 맞는 분류명에 기초한 종 동 정 작업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생명바코드이니셔티브를 이끈 Herbert and Gregory (2005) 또한 전통적인 분류학 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DNA 바코딩 기술이 전통적인 분류학을 완전히 대체 하고 오로지 CO1 정보에만 기초해 종 분류를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대 아시아인 남성의 칭기즈 칸 후예론을 온전히 Y염색체 서열분석에만 기초해 발견했 다는 타일러-스미스와 동료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과 학적 객관성과 기술 진보에 대한 순진한 가정에서 비롯 된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DNA 바코딩만으로 종을 분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최근의 일부 인간 집단에 대한 유 전체학적 연구들이 미끄러지듯 “한 개체를 형상 (eidos) 의 원형(archetype)이자 종의 기준으로 삼는” 전통적인 유형론적이고 표현학적인 (phenetic) 사고에 빠지게 만드 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Will et al. 2005). 이처럼 DNA 바코딩을 활용한 종 분류의 문제에서도 인간 유전다양 성 과학에 대한 역사에서 마주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 는 것이다. 필자는 인간 유전다양성 연구에 대한 STS적 개괄이 자연 생물다양성 연구자들에게 DNA 바코딩 사 례에서 드러나듯 스스로의 과학 활동을 보다 분석적인 차원에서 반추할 기회를 마련해주었기를 기대한다.

    적 요

    이 글에서는 생물학적 다양성 개념의 역사적 변화를 이해할 한 가지 방안으로 인간 집단의 다양성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의 역사를 탐구한 과학기술학 (STS) 연구 들을 검토한다. 이를 통해, 지난 백여 년 동안 생물학 연 구 방법론의 변화에 따라 인간 집단의 생물학적 다양성 을 지시하는 개념의 전환이 이루어져 온 과정을 확인한 다. 동시에 이 같은 연구방법과 개념의 극적인 전환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인간 유전다양성 과학 역시 연구를 설 계하고, 기술하며,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가운데 과거 연 구들의 문제적인 가정들을 담지 하는 방향으로 미끄러 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 글은 생물다 양성 연구자들이 개념과 연구 방법론 사이의 긴밀한 연 관과 우리 시대의 종 분류 작업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 들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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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urnal Abbreviation 'Korean J. Environ. Bi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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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ar of Launching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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