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박쥐는 포유강 (Mammalia), 익수목 (Chiroptera)에 속하며, 포유류의 약 1/4에 해당하는 1,300여 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Fenton and Simmons 2014). 포유류 중에서는 설치목 다음으로 종 수가 많고,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추운 지역과 대양의 섬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발견된다. 한국에 서 서식하는 박쥐류는 관박쥐과 (Rhinolophidae), 애기박쥐 과 (Vespertilionidae), 큰귀박쥐과 (Molossidae) 등 소익수아 목 (Microchiroptera)에 속하는 박쥐들이 분포하는데 3과 10 속 21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Yoon et al. 2004; Yoon 2010).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제주도는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 150여 개의 천연 용암동굴 (lava tube)과 과거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군사용 진지동굴 (cave encampment) 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중심부에 위치한 한라산과 곶자 왈 등이 있어, 동굴성 박쥐와 산림성 박쥐가 서식하기에 좋 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제주도 박쥐류에 대한 연구보고는 Mori (1928)가 처음으로 큰수염박쥐 (Myotis mystacinus) 1 종을 채집하여 기록하였으며, 이후 1933년에 체색과 비막이 더 어두운 점을 들어 제주관박쥐 (Rhinolophus ferrumequium quelpartis)를 보고하였다 (Mori 1933). 국내 학자로는 (Won 1967, 1968)이 제주관박쥐와 큰수염박쥐의 서식을 다시 기 술하였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제주도 박쥐류에 대한 연 구보고는 시작되었으나, 천연동굴이나 한라산국립공원에 대한 동물상 조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단편적인 연구보고 에 국한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Namkung (1981)은 제주 관박쥐, 긴가락박쥐 (Miniopterus schreibersi), 우수리박쥐 (Myotis daubentonii ussuriensis), 아무르박쥐 (Myotis nattereri amurensis) 등 4종을 기록하였고, Son (1981)은 제주도의 익 수류상에 관박쥐, 작은윗수염박쥐 (Myotis ikonnikovi), 속리 산애기박쥐 (Myotis nattereri bombinus), 붉은박쥐 (Myotis formosus), 큰발윗수염박쥐 (Myotis macrodactylus), 집박 쥐 (Pipistrellus abramus), 긴가락박쥐 등 7종을 보고하였 다. Shim (1986)과 Yoon and Son (1989)은 제주관박쥐 (R. f. quelpartis)와 한반도의 관박쥐 (R. f. korai)는 형태적으로나 유전적으로 동일한 종으로 결론지었다. Oh (2006)과 Oh et al. (2007)는 한라산 일대 포유류 조사 기록을 추가하여 관박쥐, 큰발윗수염박쥐, 붉은박쥐, 흰배윗수염박쥐, 물윗수염박쥐, 집 박쥐, 큰집박쥐 (Hypsugo savii), 작은긴날개박쥐 (Miniopterus fuscus), 긴가락박쥐 등 9종을 기록하였다. 국내 포유동물을 정리한 Yoon et al. (2004)은 박쥐류 9종이 제주도에서 서식하 는 것으로 기재한 바 있다. 이 외에도 Koyanagi et al. (2009) 은 큰귀박쥐 (Tadarida teniotis)와 Murina sp.를 확인하여 보 고하였고, Han et al. (2011)은 Murina sp.를 관코박쥐 (Murina leucogaster)로 확인하여 기재하였다.
현재까지 제주도 박쥐류에 대한 연구들은 천연동굴 탐사, 한라산천연보호구역 동물상 조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고, 국내외 학자들의 단기간 방문조사에 의한 보고들이 대부분 이었다. 또한, 문헌기록종 중 일부는 표본이나 서식에 대한 재확인 없이 과거의 기록을 계속해서 재인용되고 있어, 제주 도 서식 박쥐류에 대한 전반적인 분포 확인을 위한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제주도 박쥐류의 주요 서식처로 기존에 연구되어 온 천연 용암동굴, 해안 해식동굴, 오름과 제주도 해안에 조성된 진지동굴, 한라산 계곡과 교각, 숲 등 생태통 로를 선정하여 관찰, 채집 조사를 수행하고, 제주도 내에 소 장되어 있는 표본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그동안 보고되었던 문헌상의 기록들을 재검토하고, 제주도 박쥐류상을 재정립 하여 생물상보전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이루어졌 다.
재료 및 방 법
1.조사기간 및 장소
본 연구는 2006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제주시 만 장굴, 구린굴, 서귀포시 벌라리굴과 혼인지굴 등 용암동굴 (lava tube, LT) 13개 지역, 서귀포시 주상절리대 인근의 갯 갓동굴 등 해식동굴 (sea cave, SC) 3개 지역, 제주시 사라봉 과 서귀포시 송악산, 성산일출봉 등에 위치한 인공 진지동굴 (cave enforcement, CE) 12개 지역, 삼림성 박쥐의 이동경로 로 추정되는 한라산 주변의 교각과 계곡 등 생태통로 (ecocorridor, EC) 6개 지역을 구분하여 조사지역을 선정하였다 (Fig. 1).
2.직접 관찰 및 포획 조사
박쥐류 서식확인을 위한 직접조사는 현지 관찰조사와 포 획조사를 통해 수행되었다. 관찰조사는 직접 육안으로 관 찰하거나 사진촬영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포획조사는 천연 용암동굴과 해식동굴, 진지동굴, 생태통로 등에서 포집망, mist-net 등을 이용하여 수행되었다. 산림성 박쥐의 현장조사 는 한라산 동쪽과 남쪽 (1131번 국도)과 서쪽 (1139번 국도), 북쪽의 도로 (1117번 국도)에 설치된 교각 (물장올교, 동수교, 수악교, 오라교) 하부나 숲 속 통로 (영실), 계곡 (돈네코) 등 선정한 지역에서 mist-net을 이용하여 최소 2회 이상 이루어 졌다.
3.표본 조사
제주도 내에서 채집된 박쥐류 표본을 소장하고 있는 제 주대학교 동물표본실 (Jeju National University Specimen Room, JNUSR)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Jeju Folklore & Natural Museum, JFNM)을 방문하여 박제, 가박제, 액침표 본이나 냉동표본 등의 채집기록과 보관기록을 대조하고 비 교 분석하였다. 채집일자와 채집장소 기록이 없거나 불분한 경우는 조사대상에서 제외하였다.
4.종 동정
박쥐류 종 동정은 Yoon의 보고 (2010)를 따랐으며, 학명 의 기재는 Simmons (2005)와 Han (2012)의 보고에 준하여 기재하였다. 포획된 개체들은 현장에서 암수를 확인하였고, 정확한 종 동정을 위해 포획한 개체 중 일부를 실험실로 옮 겨 형태학적 특성을 분석하였다. 외부형질 분석을 위해 체 중 (body weight)과 모색, 특이사항을 기록한 후 두동장 (head body length), 전완장 (forearm length), 꼬리 길이 (tail length), 귀 길이 (ear length), 이주 길이 (tragus length) 등을 디지털 캘리퍼스로 측정하여 동정에 활용하였다. 형태 측정을 마친 시료들은 80% ethanol을 이용하여 액침표본을 제작하였다.
결과 및 고 찰
1.조사기간 동안 발견된 박쥐류
2006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제주도 34개 지역과 박 물관 등을 대상으로 박쥐류의 서식실태를 조사한 결과, 관박 쥐과 관박쥐, 애기박쥐과 붉은박쥐, 흰배윗수염박쥐, 큰발윗 수염박쥐, 관코박쥐, 긴가락박쥐, 집박쥐, 큰귀박쥐과의 큰귀 박쥐 등 3과 6속 8종이 확인되었다 (Table 1). 이 중 큰귀박쥐 는 박물관 소장 표본으로만 확인되었고, 용암동굴과 해식동 굴, 진지동굴, 생태통로 등 현장조사를 통해 2과 5속 7종을 확인하였다.
제주도 박쥐류 중에서 가장 대형인 관박쥐는 조사된 용암 동굴 13개 지역 모두에서 관찰되었고, 해식동굴 1개 지역, 진지동굴 10개 지역, 생태통로 5개 지역 등 제주도 내 전역 에서 발견되어, 다양한 환경에 서식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관찰된 관박쥐는 9,391개체로 조사된 종들 중에서 최우점종 (75.68%)으로 나타났는데, 제주도 본섬뿐만 아니라 우도의 용암동굴에서도 발견되었다. 특히 만장굴, 윗선정굴, 서삼봉 진지동굴의 경우 2,000개체 이상의 대규모 집단이 동면하는 것이 관찰되기도 하였다. 관박쥐는 6월말 이후 8월초까지 암 컷 무리에서 출산한 새끼들이 함께 관찰되었다.
다음으로 많이 관찰된 종은 긴가락박쥐 (20.73%)로 2,515 개체가 관찰되었는데, 용암동굴 중 만장굴, 구린굴, 알벌라 릿굴, 진지동굴로는 가마오름, 섯알오름 진지동굴에서, 생태 통로 중에서는 물장올교와 돈네코계곡에서도 관찰되었는데 400개체 이상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 관찰되기도 하였 다. 긴가락박쥐의 새끼들은 8월에 관찰되었고, 흰배윗수염박 쥐의 암컷무리와 같은 장소에서 출산하고 포유하는 경우도 관찰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서는 생태통로인 돈네코계곡에서만 집박쥐 7개체가 채집되었다. 이는 돈네코계곡이 서귀포시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며, 계곡 1 km 이내에 다수의 인가가 위치하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라 판단된다. 또한 집박쥐 표본 이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확인되어, 이후 제주시와 서귀포 시 지역의 주택지에 대한 방문 조사를 수행한 결과, 서귀포 시의 중산간지역 농가에서 집박쥐의 배설물이 확인되었고, 3개체를 포획하여 종을 직접 확인하였다. 집박쥐는 보통 주 택의 처마 밑의 구멍, 기와장 아래 등에서 발견되는 종으로 (Yoon 2010), 가옥들이 현대화되면서 초가집이나 기와집이 사라져 집박쥐류의 휴식처 (roosting site)가 줄어들면서 동굴 을 이용하는 박쥐들보다 더 낮은 빈도로 관찰된 것이라 생 각한다.
흰배윗수염박쥐는 용암동굴 5개 지역 (대림굴, 북오름굴, 윗선정굴, 한들굴, 알벌라리굴), 진지동굴 2개 지역 (가마오 름, 이계오름)에서 243개체가 관찰되었다. 개체 수는 가마오 름 진지동굴에서 발견된 집단이 72개체로 가장 많았으며, 이 계오름에서 발견된 1개체는 여름철 활동기 중 휴식처로 이 용하는 형태였으며, 전반적으로 집단을 형성하여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흰배윗수염박쥐 새끼들은 6월초에서 7월 초 사이에 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큰발윗수염박쥐는 용 암동굴 5개 지역 (북오름굴, 윗선정굴, 한들굴, 윗벌라리굴, 알벌라릿굴)과 진지동굴 4개 지역 (서삼봉, 가마오름, 섯알오 름, 월라봉), 물장올교, 오라교, 영실입구 등 생태통로 3개 지 역에서도 관찰되었다. 관박쥐와 함께 제주도에서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여러 서식지 형태에서 발견되었는데, 큰발윗수 염박쥐 새끼들은 6월말에서 7월말까지 관찰되었고, 포유중 인 암컷들은 관박쥐나 흰배윗수염박쥐 무리와 함께 혼군을 이루는 것도 확인되었다. 관코박쥐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 도 제주도에서 관찰되거나 채집된 기록이 없었던 종이다. 산 림성 박쥐로 알려진 관코박쥐는 용암동굴, 해식동굴, 진지동 굴 등에서는 동면, 휴식 등 어떤 형태로도 관찰되지 않았고, 생태통로인 물장올교와 돈네코계곡에서 하절기, 야간에 채 집되었다. 이 종은 산림의 나무 구멍이나 동굴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Yoon 2010), 조사 과정에서 동굴에서 는 겨울철 동면 개체나 활동기 휴식 중인 개체들이 전혀 확 인되지 않아 관코박쥐의 동굴 이용에 대해서는 향후 지속적 인 조사를 통해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붉은박쥐는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부터 중국 남부, 대 만, 일본 대마도, 한국에서 분포하며 (Yoon et al. 2004), 환 경부 지정 멸종위기 I급, 천연기념물 452호로 지정되어 있 고, 한국의 멸종위기종 Red List 상에 등재되어 있는 법정보 호종이다 (Ministry of Environment and National Institute of Biological Resources 2014). 한반도에서 붉은박쥐는 Won (1967)의 보고 이후 지속적으로 기재되고 있으며, 과거에는 많은 수가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었던 것으로 기술되어 있 다. 제주도에서 붉은박쥐의 서식은 Son (1981)에 의해 한라 산 어승생악 근처에서 1개체의 관찰이 최초기록이다. 본 조 사과정에서 붉은박쥐는 용암동굴인 만장굴 (2007년 이후)에 서 2개체, 구린굴 (2009, 2010년)에서 3개체가 관찰되었고, 서삼봉 진지동굴에서도 2015년 1월 동면 중인 개체가 관찰 되었다. 또한 제주대학교 동물표본실에 소장된 표본 (1개체) 도 확인되었다. 이 결과는 붉은박쥐가 서식처뿐만 아니라 동 면장소로써 용암동굴과 진지동굴을 이용하고 있음을 암시하 며, 제주도 전역에 분포하는 다수의 용암동굴과 진지동굴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를 통해 서식지나 동면지를 확인한 후, 체계적인 보존이나 관리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 판단 된다.
큰귀박쥐는 해안 바다절벽 틈이나 철근 콘크리트 틈에서 서식하고, 꼬리가 퇴간막에서 3분의 1정도 밖으로 길게 나와 있는 것이 특징이다 (Yoon 2010).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수장고에 가박제 표본을 확인하였으며, 제주지역이 화산활 동에 의한 용암절벽이 많이 분포하는 지형적 특성을 고려할 때, 제주도의 해안을 중심으로 큰귀박쥐의 서식에 적합한 환 경을 갖추고 있다고 추정되며, 앞으로 해당지역에 대한 서식 지 조사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2.조사지 유형별 박쥐류의 유형과 빈도
조사지역의 유형 (용암동굴, 해식동굴, 진지동굴, 생태통 로)에 따라 관찰된 박쥐류 종과 관찰된 개체 수는 Table 2에 제시한 바와 같다. 용암동굴은 13개 지역 모두, 해식동굴 3 개 지역 중 1개 지역, 인공 진지동굴 12개 지역 중 10개 지 역, 생태통로 6개 지역 중 5개 지역에서 박쥐류가 관찰되었 다. 제주도 용암동굴의 경우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길이가 짧게는 수십 m에서 긴 것은 4 km 이상 다양하게 나 타나고 있다. 특히 해당 용암동굴의 경우 내부에 낙반과 절 개지가 많고, 입구가 폐쇄되거나 숲 속에 위치하여 사람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관광용으로 개발된 동굴을 제외하고 는 사람의 출입 자체가 쉽지 않다. 이는 박쥐의 생활공간으 로써 좋은 환경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어 조사된 모든 용암 동굴에서 박쥐류의 서식이 확인되었다고 판단된다. 용암동 굴에서 발견된 박쥐는 최소 2개체 (평굴)부터 4,000개체 이 상 (만장굴) 확인되었다. 13개의 용암동굴에서 발견된 박쥐는 총 8,364개체로 지역당 평균 643개체 정도가 관찰되었으나, 지역별로 관찰된 개체 수는 매우 차이가 많았다. 이는 각각 의 용암동굴들이 보유하고 있는 개별적인 환경특성에 기인 한 결과로 추정되며, 향후 동굴의 미기후 조건이나 지형적인 조건 등에 대한 분석결과와 박쥐류 서식의 상관관계 분석이 이루어진다면 박쥐류의 생태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 여겨진다.
용암동굴 조사에서 확인된 만장굴, 구린굴 등은 출현 종 수, 개체 수가 많아 박쥐류의 서식과 관련한 동굴의 보 호나 관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특히 멸종위기 I급인 붉 은박쥐 (Ministry of Environment and National Institute of Biological Resources 2014)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장 굴과 구린굴은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또한 만장굴이나 협재-쌍용굴과 같이 현재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 는 용암동굴의 경우는 박쥐류 서식지의 보호가 필요한 만큼 관광산업 육성에 대한 계획단계에서부터 복합적으로 고려되 어야 할 것이다.
해안에 위치한 해식동굴 3개 지역에 대한 조사에서 우도 의 검멀레굴과 서귀포시 갯갓동굴에서는 박쥐류가 발견되지 않았고, 서귀포시 다람쥐굴에서만 관박쥐 3개체가 관찰되었 다. 검멀레동굴과 갯갓동굴은 해수가 직접 닿을 수 있는 구 조로, 해수가 직접 닿는 곳에서는 박쥐류의 활동이 매우 제 한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만조 시 해안선에서 30 m 정 도 떨어져 있는 다람쥐굴에서 관박쥐가 관찰되었으나 진지 동굴 조사에서 도두봉, 일출봉의 해안 진지동굴에서는 관찰 되지 않았다. 이상의 결과는 박쥐류의 서식이나 동면에 있어 해수에 대한 노출이 서식지, 휴식처, 동면처 선택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해주는 간접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인공 진지동굴의 경우 과거 일제강점기 말, 태평양전쟁에 대비하여 건설된 군사시설로, 제주도의 각처에 위치한 오름 과 해안선 등지에 산재해 있다. 특히, 제주도 서부지역인 한 경면, 대정읍, 안덕면 지역에는 오름과 해안선에 매우 많은 수의 진지동굴이 발견되고 있다. 동부지역 역시 당시 구축 된 해안 진지동굴이 성산일출봉과 주변 오름에서 발견되고 있다. 조사된 진지동굴들은 제주시 지역과 제주도 서부지역, 성산일출봉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해안에 위치한 일출봉 과 도두봉을 제외한 9개 지역의 진지동굴에서 총 3,663개체 가 확인되어, 많은 수의 박쥐가 진지동굴을 동면이나 활동기 휴식처로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기간 동안, 방문한 오름 진지동굴은 크게 오름이나 지역의 명칭에 따라 구분하 였을 때 12개 지역이었으나, 동일 오름 내에서도 여러 개의 진지동굴이 있는 경우는 접근이 가능한 진지동굴을 모두 조 사하였다. 현재까지 제주도에서 박쥐류에 대한 연구는 대부 분 천연동굴인 용암동굴에 서식하는 박쥐류를 대상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인공동굴인 진지동굴에 대한 집중 조 사 결과는 거의 없다. 진지동굴의 경우 용암동굴에 비해 천 정의 높이가 낮고, 내부 습도가 낮은 경우가 많아 박쥐류의 서식에는 용암동굴보다 좋다고 할 수 없으나, 관코박쥐를 제 외한 5종의 박쥐들이 발견되어, 향후 제주도 박쥐류 연구에 서 지속적인 조사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위치한 생태통로 6개 지역 (해발 318 m~950 m)에 대한 조사결과, 5개 지역에서 관박쥐, 큰발 윗수염박쥐, 긴가락박쥐, 관코박쥐, 집박쥐 등 5속 5종이 확 인되었다. 물장올교에서는 총 74개체가 관찰 또는 채집되었 으며, 오라교에서는 22개체, 영실입구 숲에서는 34개체가 확 인되었고, 돈네코계곡에서는 237개체가 확인되었으나, 동수 교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관박쥐, 긴가락박쥐, 큰발윗 수염박쥐 등은 다른 유형의 조사지와 같은 종이었으나, 관 코박쥐와 집박쥐는 생태통로에서만 관찰되었다. 관코박쥐의 제주도 서식은 본 조사를 통해 확인되어 이후 Koyanagi et al. (2009), Han et al. (2011)의 보고에 수록되었다. 돈네코계 곡에서 가주성 집박쥐 7개체가 채집되어, 인근 지역의 주택 과 시설 등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3.제주도 내 기관 소장 표본 조사
제주대학교 동물표본실과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 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박쥐류의 표본을 조사하였다. 제주대 학교 동물표본실에서는 액침표본, 가박제, 냉동표본의 형태 로 관박쥐와 붉은박쥐, 관코박쥐, 흰배윗수염박쥐, 큰발윗수 염박쥐를 확인하였고,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는 관박쥐와 집 박쥐, 큰귀박쥐를 전시 중인 박제와 보관된 표본 상태로 종 을 확인하였다. 표본 조사에서 확인된 박쥐 종들 중에서 관 박쥐와 붉은박쥐, 긴가락박쥐, 큰발윗수염박쥐, 집박쥐는 용 암동굴 조사, 진지동굴 조사, 생태통로 조사 등에서 확인된 종들이었으나, 큰귀박쥐는 현장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 다. 큰귀박쥐는 민속자연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인 가박 제 (표본번호 30-22)를 확인하였으나, 채집일자와 채집장소 등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제주대학교 동물표 본실과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집박쥐 표본 1개체가 각각 확 인되었다. Table 3
4.제주도의 박쥐류상에 대한 연구
현재까지 제주도 박쥐류상에 대해서는 Mori (1928)가 윗 수염박쥐 (Myotis mystacinus)를 최초로 보고한 것을 포함하 여 문헌기록과 연구를 통해 확인된 종들을 정리하여 Table 4에 제시하였다. 기존에 보고된 문헌기록 상에는 관박쥐 과, 애기박쥐과, 큰귀박쥐과 등 3과 7속 15종이 기록되어 있 다 (Mori 1928, 1933; Won 1967, 1968; Namkung 1981; Son 1981; Yoon et al. 2004; Oh 2006; Oh et al. 2007; Koyanagi et al. 2009; Yoon 2010; Han et al. 2011).
본 연구에서는 포획 또는 관찰 7종, 표본 1종 등 총 3과 6 속 8종의 박쥐류의 서식을 확인하였다. 문헌기록종 중에서는 애기박쥐과의 큰집박쥐, 작은긴가락박쥐, 윗수염박쥐, 쇠큰 수염박쥐, M. branditii, 물윗수염박쥐, 작은집박쥐 등 7종은 확인되지 않았다. 비록 본 연구에서 제주도의 자연환경에서 박쥐류가 서식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인 천연 용암동굴, 진 지동굴, 생태통로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여 다양한 박쥐류의 서식을 확인하였으나, 조사지역의 제한성이 없지 않아, 문헌 기록종들 중 발견되지 않은 종들이 제주도에 서식하지 않는 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결 론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제주도에는 150 여 개의 용암동굴, 해안에 위치한 해식동굴, 과거에 건설된 진지동굴이 곳곳에 산재하며, 한라산보호구역 내의 삼림과 계곡 중에는 여전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많고, 중 산간에 분포하는 곶자왈 등은 동굴성 박쥐와 산림성 박쥐가 서식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조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제 주도 박쥐류에 대한 연구들이 한라산이나 천연동굴 학술조 사의 일환으로 진행되거나, 국내 또는 외국 학자들이 단기간 에 걸친 방문조사로 진행된 사례들이 많아, 지속적이고 체 계적인 조사결과들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 는 약 10년 동안 제주도의 34개 지역에서 현장조사와 박물 관 표본 확인 등을 수행하여, 명확한 근거를 위주로 과거 제 주도에서 보고된 박쥐류 15종 중 8종의 서식을 확인하였다. 제주도 박쥐류에 대한 연구들 중에는 개인적인 관찰에 대한 미보고 자료를 문헌에 기재한 경우도 간혹 발견되며, 표본의 부재로 인해 재확인이 불가한 경우도 없지 않다. 또한 박쥐 연구에 대한 기준자료들이 외국의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되 었고, 학자들의 의견이 다양하여, 임의적인 아종명 표기, 오 동정, 부정확한 국명 표기 등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해결되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용암동굴, 해식동굴, 진지동굴, 생태통로 등 서식지 유형을 4가지로 구분하여 관찰, 채집한 결과를 정리 하였으며, 그 결과 발견되는 박쥐 종은 다소 다른 결과를 보 였다. 따라서 서식지의 생태적 조건과 박쥐류 서식과의 상관 관계를 구명하기 위한 조사연구가 지속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제주도에서의 박쥐류 연구가 천연 용암동 굴을 중심으로 진행된 결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나, 본 연구를 통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진지동굴이나 생태통로에서 도 다양한 박쥐 종들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제주도 각처에 산재되어 있는 진지동굴, 계곡, 산림, 곶자왈 등 생태통로에 대한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박쥐류 조사가 요구됨을 보여주 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생물지리학적으로 중요한 역할 을 담당하는 제주도의 지리학적 위치를 감안할 때, 한반도, 중국, 일본, 대만 집단들과의 계통 유연관계, 생태적 특성, 생 물지리학적 연구 등 다양한 연구들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적 요
본 연구는 제주도에 분포하는 박쥐류상 (Chiroptera)을 밝 히기 위해 2006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용암동굴, 해식 동굴, 진지동굴, 생태통로 등으로 지역을 구분하여 조사되었 다. 또한 제주도 내 박물관에 소장된 박쥐류 표본을 조사하 였다. 연구결과, 3과 6속 8종의 박쥐류의 서식이 확인되었는 데, 이 결과는 1928년부터 보고된 사전 문헌기록들과는 다 소 다른 양상을 나타내었다. 용암동굴과 진지동굴에서는 관 박쥐, 흰배윗수염박쥐, 붉은박쥐, 큰발윗수염박쥐, 긴가락박 쥐가 공통적으로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식동굴에 서는 1개 지역에서만 관박쥐가 확인되었고, 생태통로에서는 관코박쥐와 집박쥐를 비롯한 5종이 확인되었다. 지역 내 박 물관에 소장된 표본조사 결과 큰귀박쥐의 표본도 확인되었 다. 연구를 통해 확인된 8종 외에 큰집박쥐, 작은긴가락박쥐, 윗수염박쥐, 쇠큰수염박쥐, M. branditii, 물윗수염박쥐, 작은 집박쥐 등 7종은 확인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멸종위기 종으로 알려진 붉은박쥐와 한반도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흰배윗수염박쥐가 제주도에서 서식하는 것이 확인된 것과, 관코박쥐도 조사과정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는 등 다양한 장 소에서 박쥐류가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제주도에서 박쥐류의 보전을 위한 생물다양성 연구나 생태학적 연구를 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것 이라 판단된다.